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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마녀 김다미보다 더 마녀처럼 악랄했던 조민수

마녀 김다미보다 더 마녀처럼 악랄했던 조민수  

 

마녀 김다미보다 더 마녀처럼 악랄했던 조민수

 

오프닝 씬은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시작했지만, 꽤 오래 어수선하면서도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서야 기대했던 화려하고 강렬한 액션과 SF적인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미 김빠진 콜라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어서 잘 몰입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영화를 관람한 탓인지, 보고 난 후에도 [마녀](박훈정 감독)에 대해 크게 호평을 보내는 사람들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그 동안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신세계], [대호], [브이아이피] 등 믿고 보는 박훈정 감독의 또 다른 새로운 장르의 시도라는 점은 분명 흥미로웠다.     

 

마녀 김다미보다 더 마녀처럼 악랄했던 조민수 

 

집안의 농장일을 거들며 착한 딸, 모범생으로 평범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자윤(김다미) 앞에 어느 날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들이 찾는 아이가 자신이 아니라고 아무리 부정해도 그들은 믿지 않고, 서서히 죄어오던 그들의 접근은 점차 강력한 위협으로 바뀌면서 평화롭던 자윤의 일상은 뒤바뀌고 만다.

 

어깨 뒤에 남겨진 알 수 없는 표식에 대한 궁금증,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유 모를 통증을 참아내고 있지만 과거에 대해 그 무엇 하나 기억하지 못하는 자윤. 정작 그녀 자신도 모르는 그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한 인물들의 등장은 자윤을 더욱 큰 혼란으로 밀어넣는다.

 

이처럼 [마녀]는 시설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은 의문의 사고가 발생하고, 그날 밤 홀로 탈출한 후 모든 기억을 잃고 살아온 고등학생 자윤 앞에 의문의 인물이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액션 영화다. 자윤 역을 맡은 김다미는 1,000: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평범한 여고생 역을 하다가 마녀로 변신한 후에도 [마녀]라는 제목이 기대케 했던 마녀다운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마녀 김다미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 닥터 백(조민수)이다. 오히려 주인공 김다미보다 더 마녀 같은 포스를 강렬하게 뿜어내는 모습이다. 닥터 백은 김다미의 뇌를 자신의 기획에 따라 평범한 사람보다 더 뛰어나도록 만드는 연구실험을 하는데, 그런 행위를 한 대가를 바로 그 김다미에게 톡톡히 받는다.

 

게다가 숱한 사람들을 실험실의 모르못처럼 다루면서 필요에 따라 잔인하게 살해해 왔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총 한 발 맞고 아프다고 펄펄 뛰며 통증을 호소하는 모습은 코미디 같아 실소가 터져나왔다. 늘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면서 살아온 사람들, 맞으면 아프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아니, 인식할 필요도 없었던 사람들이 보여주는 맹점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소 뇌를 10퍼센트밖에 활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 뇌를 조작해서 더 활용도를 높이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 닥터 백은 그런 뇌를 가진 사람들을 생산(?)해 내고, 그들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함으로써 이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차 있었던 듯하다.

 

실제로 뇌 사용량이 24퍼센트가 되면 신체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고, 40퍼센트가 되면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으며, 62퍼센트가 되면 타인의 행동을 컨트롤할 수 있고, 100%에 이르면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의 진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뇌의 기능을 100퍼센트까지 끌어올리는 사이에 인간성의 말살만 가져올 뿐인 불행 속에서 결국 죽음을 맞는 스칼렛 요한슨의 영화 [루시](뤽 베송 감독)를 봐도 그렇고, 이 영화 [마녀]를 봐도 그렇고,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좀더 신속하게, 좀더 편안하게, 좀더 여유롭게 살기 위해 발명한 문명의 이기(利器)들로부터 그 혜택을 받은 것만큼의 대가를 사람들은 톡톡히 치러왔고 또 지금도 치르고 있는 중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다미도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들이 자기 삶을 휘저어놓지만 않는다면 이제까지 함께하면서 잔잔하고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준 부모님과 이런저런 힘겨운 문제가 있더라도 같이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대답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가진 뛰어난 능력이 닥터 백의 조정에 따라 그저 살인무기로 사용될 뿐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꼭두각시의 삶을 살게 될 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짜 마녀는 김다미가 아니라 인간 살인기계를 이용해 세상을 조정하려 했던 악랄한 조민수가 아닐까? 

 

110년 만의 폭염이라는 올여름 무더위도 어느덧 슬며시 꼬리를 내리고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가을 느낌이 난다. 이렇듯 순리를 충실히 따르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인간이 뇌를 10퍼센트 이상 더 쓴다 한들 뭐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더 강력하게 조작된 뇌로 사람들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사람들을 더 잘 제압할 수 능력을 갖게 되었다 한들, 그것이 인류를 위해 좋은 쪽으로 쓰이는 게 아니라 제 이기심과 욕심을 채우는 데 쓰이는 거라면 예측불허의 재앙만 불러올 뿐이라는 게 불보듯 뻔하다. 안 그래도 잘난(?) 인간들의 갖가지 갑질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 아닌가.

 

이상, 마녀 김다미보다 더 마녀처럼 악랄했던 조민수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