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흑금성 황정민과 이성민의 호연지기 넘치는 인생공작

공작 흑금성 황정민과 이성민의 호연지기 넘치는 인생공작

 

공작 흑금성 황정민과 이성민의 호연지기 넘치는 인생공작

 

황정민 이성민 주연의 [공작](윤종빈 감독)은 목숨이 오가는 곤경에 맞닥뜨렸지만 인간다운 배포를 가진 사람을 만난 덕분에 <추운 나라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암호명 흑금성 박석영(황정민)의 스토리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화의 주인공인 흑금성은 박채서라는 분이다. 그 모티브가 된 사건을 윤종빈 감독의 설명에 따라 간략히 소개하면, 흑금성 사건은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가 주도한 북풍공작 중 하나다. 

 

당시 안기부 공작원이었던 박채서는 북한 고위관계자들과 만나 사업을 성사시키는 핵심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1998년 3월 안기부 전 해외실장 이대성이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 인사 간의 접촉내용을 담은 기밀정보를 폭로하면서 이 사업에 차질이 생기자 남한측에서는 박채서를 제거하려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아차린 박채서는 일생일대의 공작을 펼친다.

 

공작 흑금성 황정민과 이성민의 호연지기 넘치는 인생공작

 

"불행은 친구를 가려준다"고 한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든, 언제든, 난처한 일에 빠지게 되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거라고 믿었던 친한 친구는 몸을 사리고, 오히려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친구가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상대도 도와줄 여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누구나 친구의 어정쩡한 태도에 깊은 배신감에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이런 어려운 일을 겪지 않았으면 평생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친구의 우정의 크기와 사람 됨됨이를 알게 되는 순간이다.

 

 

"불행은 친구를 가려준다"고 했지만, 꼭 친구가 아니라도 "불행은 사람도 가려준다". 어떤 일이든 함께 도모했다가 틀어지게 되었을 경우, 잘나가거나 좋은 일만 있을 때는 모르고 넘어갔을 뻔했던 상대의 인간성을 여실히 깨닫게 되는 일이 많은 것이다. 적인 줄 알았던 사람에게서는 도움을 받는 반면, 아군인 줄로만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에게서는 배신을 당하고 죽이네 마네 하며 울분을 터뜨리는 일도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일은 사소한 개인감정에 따라 처리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고, 또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이어서 아무리 상대를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돕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애초에 자신에게 행여 똥물이라도 튈까봐 미리부터 싹을 자르고 나서는 사람들의 경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법이다.

 

 

[공작]에서 아군으로부터 배신당한 박채서 역의 황정민을 적군인 북경 주재 고위간부 리명운(이성민)은 그 동안 그와 쌓아온 관계와 인간적 면모, 그리고 호연지기로 그를 살려서 돌려보낸다. "불행은 사람도 가려준다"는 말이 입증된 셈이다. 목숨줄이 오가는 일촉즉발의 상황인데다 '남과 북'이라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황정민이성민이지만, 두 사람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마음을 합쳐 <인생공작>의 정점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기에 훗날 벼랑끝에서 살아 돌아와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멀리서나마 서로에게 선물로 준 시계와 넥타이핀을 살짝 치켜들어 보이며 뜨거운 눈물을 삼키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시계는 황정민이 이성민에게 선물로 준 값비싼 롤렉스다. (하지만 보기엔 그럴싸해도 짝퉁이다.) 그리고 넥타이핀은 이성민이 황정민에게 준 선물이다. 롤렉스에 비하면 소박하기 그지 없는 넥타이핀이다. 그 넥타이핀에는 <호연지기>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호연지기란 맹자 상편에 나오는 말로, 사람의 마음에 차 있는 너르고 크고 올바른 기운 혹은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운 바 없는 용기를 말한다. 10대 때 주로 선생님들에게서 곧잘 듣곤 했던 말이지만, 호연지기를 가지라고 한들, 어린 나이부터 공부에 쫄아 있던 아이들 귀에 그 말이 가진 뜻이 제대로 전달될 리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마주한 호연지기라는 단어는 뜻밖에도 아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공작]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다, 실제로 호연지기를 품지 않았다면 황정민, 이성민 두 사람의 <인생공작>은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터임을 알기에 더 진정성 있게 느껴졌던 듯하다.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미리 일을 꾸민다'는 사전적 뜻을 가진 <공작>이라는 말은 흔히 좋은 데보다는 나쁜 데 더 많이 쓰이곤 하지만, 영화 [공작]에서 황정민과 이성민이 보여준 것과 같이 호연지기로 맺어진 공작이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무슨 일이든지 꾸며도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한편으로는 든다. 

 

 

안기부 해외실장 최학성(조진웅)이다. 일이 틀어지는 듯싶자 그 당당한 풍채가 무색하게 재빨리 제 몸부터 챙기며 달아날 궁리를 비열한 캐릭터를 맡았다. 지은 죄가 있을 거여서인지(? ㅎㅎ) 평소에도 자신의 직위에 걸맞는 멋진 카리스마를 보여주지는 못한 듯하다. 

 

아마 언제든 배신의 칼날을 갈고 있는 인물이기에 늘 몸을 사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삶이 그를 대범하지 못한 인물로 만들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은 지금은 흑금성 황정민을 버렸지만, 다음엔 또 누구를 버릴까 의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필요하다면 이완용이마냥 나라도 팔아넘길지 누가 알까. 

 

 

자칫 칙칙하고 지루할 뻔한 전개에 간간이 향신료를 뿌려주듯 야죽야죽거리며 감칠맛을 더해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과장 정무택(주지훈)이다. 인민복일망정 군복이 아주 잘 어울리는 멋진 모습이었다. [신과 함께 1 2]에도 출연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으니, 아마 올해 가장 핫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배우가 아닐까 싶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역을 맡은 배우 기주봉은 씽크로율이 꽤 높았다. 하긴 특수분장을 하는 데 6시간이나 걸렸다고 하니, 그 노고가 빛을 발한 셈이다. 북풍 관련 김정일의 발언에는 실소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김정일이 등장할 때마다 댕댕이가 쪼르르 달려나오곤 해서, 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 총성이 오가는 전쟁터나 다를 바 없는 긴장된 만남의 자리에  '이 무슨 생뚱맞음인가?'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윤종빈 감독이 북한 관련 서적 중 탈북시인 장진성이 쓴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라는 회고록을 바탕으로 애완견을 등장시킨 거라고 한다. 시인이 김정일을 만나기 위해  별장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강아지가 먼저 들어와서 발을 핥았다는 것이다. 김정일과 댕댕이라니 왠지 어울리지도 않는 것 같고 좀 의외이기도 하지민, 실제로 김정일은 별장마다 시츄며 말티즈 등 반려견을 많이 키웠다고 한다. 

 

 

정치적 색채가 짙은 영화이지만, 작게는 어떤 인간을 가려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공작]은 액션느와르라 해도 때리고, 찌르고, 쏘고 해서 선혈이 낭자해지는 잔혹한 장면 하나 없었기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스토리 전개상 필요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런 장면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간의 우리나라 영화들은 잔인한 액션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스크린을 가득 메웠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감독은 [공작]에 <이빨액션>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피튀기는 잔인한 장면 없이도 오로지 대화로써만 사람들을 몰입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공작]의 큰 강점인 셈이다. 아마 예매율이 2위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1위를 탈환하여 역주행을 시작한 것에는 이런 [공작]의 매력에 대한 입소문이 한몫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신분이 노출되자 1998년 안기부에서 해직된 박채서는중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모색하는 한편 한때 자신의 보위부 연락책을 만나 남북협력 광고사업을 재추진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시절인 2010년 새벽 자택에서 국정원 요원들에게 체포되었고, 북한에 군의 작전교범 등을 전달한 혐의로 구속돼 2011년 징역 6년형을 받았다. 그리고 2016년 6월 만기출소했다.

 

이상, 공작 흑금성 황정민과 이성민의 호연지기 넘치는 인생공작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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