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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죽기 위해 떠난 사람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

죽기 위해 떠난 사람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

 

증조할머니뻘 되는 친척어르신이 몇 해 전 106세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었다. 그 증조할머니 덕분에 100세가 넘으면 청와대에서 연초에 새해선물을 보내온다는 것도 알게 됐었다. 선물의 종류는 해마다 바뀌었는데, 워낙에 효자효부였던 이모할머니 부부는 "우리가 이래봬도 청와대에서 선물을 받는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이야" 하며 자랑 아닌 자랑을, 그렇다고 전혀 빈말만은 아닌 말씀을 하곤 했다. 

 

눈도 거의 안 보이고, 일어나지도 못해서 앉은걸음으로 집안을 휘적거리시면서도 그 연세에 이르도록 허투루라도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담아본 적이 없는 분이었는데, 이제는 같이 늙어버린 아들과 며느리가 도우미 아주머니의 손을 빌려서나마 알뜰히 보살펴주는 것을 보고 참 복받은 노인이다 싶었다.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여럿 구한 게 분명했다. (ㅎㅎ) 

 

죽기 위해 떠난 사람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

 

그런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거야 모든 사람의 희망사항이겠지만, 곁에서 지켜보니 막내이모할머니 부부가 할 짓(?)이 아니었다. 70세가 넘어가도록 증조할머니 때문에 남들 다 가는 여행 한 번 마음놓고 못 가는 것은 둘째치고, 부부동반 모임이 있어도 늦게까지 머물지 못하고 부랴부랴 돌아오곤 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특히 진작에 며느리를 봤는데도 시어머니 노릇은커녕 그저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해야 할 며느리 도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막내이모할머니가 정말 안쓰러웠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최근에는 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 때문에 이른바 '노노(老老)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져 가고 있는 요즘이다. 의학이나 과학계에서는 인간이 100세를 넘어 120세까지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해 오고 있지만,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온전히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삶이 아닌 한, 무조건 오래 산다는 것이 축복이기는커녕 큰 재앙이 될 날이 오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무리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이 맞는 말이라 해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EBS [지식채널e]에서 방영한 [죽기 위해 떠난 사람]은 오래 사는 것, 그리고 '안락사' 혹은 '존엄사'로 불리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를 주었다.

 

죽기 위해 떠난 사람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

 

생일축하 노래와 함께 104세가 되던 해에 긴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호주의 유명한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입니다.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평생 기다려온 지금 이 순간,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기 위해 떠난 사람입니다.

 

 

더는 사람에서 기쁨을 느낄 수가 없어진 구달 박사는 안락사가 금지된 고국 호주를 떠나 마침내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에 도착합니다. 호주는 빅토리아주에서만 안락사를 합법화했지만, 불치병에 걸린 상황에서 6개월 미만의 시한부 선고가 내려져야만 허용된다고 합니다. 반면에 스위스는 건강한 사람이라도 오랜 기간 의향을 내비쳐왔다면 안락사를 요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스위스에 와서 기쁩니다. 다음 여정을 마치면 더 기쁠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선택한 '다음 여정'이란 바로 ‘죽음’을 말합니다.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그가 직접 계획한 ‘그날’, 그는 가족과 충분히 작별인사를 나누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주사기의 밸브를 열어 삶을 끝냈습니다. 이는 불치병이 아닌 고령을 이유로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한 최초의 사례라고 합니다.

 

 

그는 평생을 숲속에서 자연한 환경을 연구한 학자입니다. 66세에 다니던 대학에서 퇴직하고, 은퇴 후에도 오지를 헤매며 연구를 계속했지만, 84세가 되자 “앞으로는 운전하실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되고, 99세에는 “시력이 많이 떨어지셨네요”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100세에는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하루 종일 앉아 있습니다. 그 후 104세에 집안에서 넘어진 후 이틀 밤낮 동안 스스로 일어서지 못했다고 합니다.

 


100세까지 논문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해 온 그는 “나는 이제 앉아 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다시 한 번 내 발로 숲속을 걸어볼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을 가져보지만, 더는 불행해지고 싶지 않아서 마지막 날을 계획합니다.

 


그는 “나는 우울하지도 참담하지도 않다"며, "눈물로 가득한 장례식은 치르지 말아주세요, 시신은 해부용으로 기부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를 잊어주세요. 나는 이제 다시 숲속으로 떠납니다"라고 덧붙입니다. 가족들은 슬픔을 억누르면서 그가 선택한 결말을 오롯이 지켜봐줍니다.

 


삶의 끝에 맞이한 그의 마지막 축제, “나의 죽음도 결국 나의 삶 나의 선택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이상, 죽기 위해 떠난 사람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