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전종서 [버닝] 영혼의 결핍이 불러온 재앙 태움

 

유아인 전종서 [버닝] 영혼의 결핍이 불러온 재앙 태움

 

 

가정환경이 인간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다. 특히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정신적/신체적 폭력으로 학대를 받고 자란 사람의 삶은 불행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큰 의지의 대상이자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부모에게서 가혹한 폭력과 학대를 받고 영혼을 다친 그들의 내면에서는 점차 분노와 좌절감이 차오르고, 그 분노와 좌절감은 안타깝게도 폭력의 대물림이나 범죄, 은둔, 자실로 그들을 몰아가곤 한다. 

 

하지만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런 환경에서 성장한다 하더라도 모두 다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암울함과 불우함 속에서도 꿋꿋한 정신력으로 어긋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뭘까? 아마도 상처받은 영혼이라도 스스로 잘 다독이면서 더 이상 덧나지 않도록 해온 힘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힘은 어떻게 키워지는 것일까? 그 힘 역시 아마도 물질적인 결핍이나 암울한 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 영혼을 고양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온 덕분이리라.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부해도 영혼이 결핍된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살고, 반대로 아무리 물질적 결핍에 시달려도 영혼이 충만한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개중에는 세상의 기준에 비쳐볼 때 지극히 풍요로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더없이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물질적 결핍만이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요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 즉 영혼이 결핍된 사람 또한 물질적 결핍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 못지않게 불행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삶에서 물질적 행복만이 아니라 영혼의 행복도 반드시 함께 추구해야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창동 감독 유아인 전종서 주연의 영화 [버닝]에는 이처럼 물질적 결핍과 영혼의 결핍으로 인해 불행해하는 사람, 물질적으로는 충만하지만 영혼의 결핍으로 인해 불행한 사람, 물질적으로는 결핍돼 있지만 나름대로 영혼을 고양시키고자 노력하고 있기에 꼭 불행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사람 등 세 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카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이 말하는 두 명의 굶주린 자, 즉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와 '리틀 헝거'(little hunger)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레이트 헝거의 의식을 몸으로 표현해 보인다. 해미가 표현한 그레이트 헝거는 영혼을 고양시킴으로써 현실의 물질적 결핍을 상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리틀 헝거는 영혼의 충족은 도외시한 채 그저 물질적 풍요로움만 채우기게 급급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해미가 들려주는 이 그레이트 헝거와 리틀 헝거의 이야기는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차라리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했던 영국의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굶주림을 면하는 데 온 생애를 바치는 리틀 헝거는 '배부른 돼지'를 삶의 목표로 한 채 영혼의 고갈로 인한 불행을 자처하는 반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부해도 영혼이 결핍돼 있다면 불행하기에 영혼을 고양시키고자 노력하는 그레이트 헝거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지향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버닝]의 세 등장인물은 각각 어디에 해당될까? 즉 리틀 헝거는 누구이고 그레이트 헝거는 누구일까? 아마도 벤(스티브 연)은 리틀 헝거일 것 같다. 외면적으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지만 그의 내면은 영혼의 결핍으로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 텅 빈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는 주기적으로 비닐하우스를 불태워야 하는 충동에 시달리는 삶을 산다. 그런데 이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그의 행위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비밀이 숨어 있다.

 

해미 또한 리틀 헝거다. 나름 그레이트 헝거의 삶을 부러워하면서 정신적 탈출구를 찾기 위해 나레이터 모델로 모은 돈을 아프리카 여행에 쓰기도 하지만, 결국 물질적 풍요의 상징인 벤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다가 결국 '태움을 당하고 마는' 그녀 역시 벤처럼 영혼의 결핍으로 허덕거리는 삶을 산다. 

 

한편 종수는 어린시절 궁핍한 가정환경에 아버지로부터는 수시로 폭력을 당하고 어머니는 자신을 두고 떠나는 불우한 삶을 살아오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영혼이 결핍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즉 그레이트 헝거의 삶을 지향하는 듯하다.

 

 

그레이트 헝거와 리틀 헝거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버닝]의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면, 유통회사에서 알바생으로 일하는 종수(유아인)는 배달을 갔다가 어릴적 같은 동네에서 살던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종수와 해미는 금세 친해지고, 종수는 어느 날 해미에게서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 동안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종수는 흔쾌히 그 부탁을 들어주고, 그 후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났다는 정체불명의 남자 벤을 종수에게 소개한다. 부드러운 미소, 모든 것을 다 갖춘 풍요로움 속에서도 언뜻언뜻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느껴지는 남자다.  

 

 

그러던 어느 날, 벤은 해미와 함께 종수의 집으로 찾아오고, 종수에게 자신의 비밀스러운 취미, 즉 약 두 달 간격으로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일에 대해 고백한다. 그리고 벤이 그 고백을 한 직후 해미는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종수는 '해미가 사라진 것은 혹시 벤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가지고 벤을 추적하던 중 벤이 해미를 불태워 죽인 게 분명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마침내 벤의 자동차와 함께 그를 불태워 죽인다. 영혼의 결핍을 버닝 ,즉 '태움'으로 채우려 한 벤이다.

 

태움은 언젠가부터 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간호사들의 태움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간호사들 사이에서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즉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가하는 정신적/육체적 괴롭힘을 의미한다. 

 

명분은 이렇듯 교육적 차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과도한 인격모독인 경우가 많아 간호사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고 한다. 마치 허기진 영혼의 리틀 헝거 벤이 그 동안 만나온 여자들을 하나씩 불태우는 것으로 자신의 영혼의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행위와 다를 바 없어보인다. 자신의 허기를 남을 희생시킴으로써 채우고자 하는 인간의 더러운 욕망이 곧 버닝, 태움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시기보다 암울한 삶을 사는 젊은 세대들의 내면에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이런 큰 분노가 잠재돼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버닝]을 연출했다고 말하는 이창동 감독은 “지금 젊은이들은 자기 부모 세대보다 더 못살고 힘든 최초의 세대다. 지금까지 세상은 계속 발전해 왔지만, 더 이상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없다. 요즘 세대가 품고 있는 무력감과 분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인다. 

 

물이 끓으면 저절로 뚜껑이 열리듯, 내면에 분노가 가득차 오르면 언제든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 분노의 폭발을 영혼의 고양으로 다독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절망감이 앞설 뿐이다. 하지만 긍정심리학자로 행복학을 강의하고 있는 탈 벤 샤하르는 "어떤 사람은 행복할 만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꿈도 이뤘고 성공도 했는데 말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항상 숱한 문제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늘 삶에 대한 감사함을 잃지 않는데, 그것은 영혼이 결핍돼 있느냐 아니면 결핍돼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신념과 이상이 결여된 삶은, 즉 영혼이 허기진 삶은 물질만으로는 결코 달랠 수 없는 불행에 허위적거리게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돈도 있고 명예도 있는 화려한 삶을 살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도 이러한 내면의 공허함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더 큰 명예를 얻으면 틀림없이 행복한 삶을 살게 되리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끊임없이 저지르는 착각인 걸까? 그렇기에 영혼의 결핍이 불러오는 재앙에 자신있게 대항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물질이 아닌 정신의 고양과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이상, 유아인 전종서 [버닝] 영혼의 결핍이 불러온 재앙 태움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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