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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7호실 DVD방 사장 신하균과 알바생 도경수의 웃픈 열혈생존극

 

7호실 DVD방 사장 신하균과 알바생 도경수의 웃픈 열혈생존극

 

 

'웃픈'이라는 단어가 있다. '웃기면서도 슬프다'는 의미를 담은 조어다. 웃기면서도 슬프다니, 웃기면 웃기는 거고 슬프면 슬픈 거지, 왜 웃기면서도 슬플까? 보나마나 생존을 위해서라면 염치고 체면이고 다 내던지는 서글픈 코미디 같은 요즘 세태를 풍자한 것일 테니, 평소 보는 것도 쓰는 것도 그리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 단어 중 하나다.

 

그런데 DVD방 사장 신하균과 그곳 알바생 도경수를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 [7호실](이용승 감독)을 보고 있노라니, 이 <웃픈>이라는 단어가 이토록이나 절묘하게 어울리는 스토리가 또 있을까 싶다. 장르는 코미디라고 하지만 블랙코미디이고, 블랙코미디라곤 해도 블랙코미디라고만 치부해 버리엔 너무나 씁쓸하고 짠한 삶의 모습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7호실의 7, 행운의 럭키 세븐, 즉 7이라는 숫자도 이 두 사람 앞에서는 행운의 숫자로 불리기가 민망할 것 같고, 두 남자의 그럴싸한 케미를 의미하는 브로맨스라는 조어도 이 두 사람에겐 왠지 좀 갖다 붙이기가 처량하기 짝이 없다. 또 부의 상징인 압구정동이라는 동명(洞名)도 이 영화에서는 '압구정동 맞아?'라는 의구심에 그저 헛웃음을 짓게 할 뿐이다.

 

7호실 DVD방 사장 신하균과 알바생 도경수의 웃픈 열혈생존극

 

서울 압구정동의 망해가는 DVD방 사장 두식(신하균)이다. 이미 한물간 DVD방을 10년째 어렵게 운영해 오다가 적자만 쌓이자 별수없이 부동산에 팔아달라고 내놓은 지 5개월이 넘었다. 그런데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매수자가 기적적으로 나타난 순간,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난다.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새로 고용한 알바생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닦으려다가 감전사고로 죽고 만 것 이다.

 

DVD방을 팔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코앞에 둔 두식은 행여 이 사고로 파투가 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만 집착한 채 그 시체를 평소 기도방으로 쓰던 7호실에 숨기고 문을 잠가버린다. 제발 이 DVD방을 살 사람을 보내달라고 무릎 꿇고 울며 불며 기도하던 방이다.

 

 

학자금 빚을 갚으려고 신하균의 DVD방에서 알바를 하는 태정 역을 맡은 도경수다. 음악을 만드는 것이 꿈이지만, 절대적인 빈곤 앞에서 차마 청춘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가엾은 흙수저 인생이다. 이런 그에게 빚을 해결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마약을 잠시 숨겨달라는 귀가 솔깃한 제의가 들어오고, 태정은 7호실에 그 마약을 7호실 침대 매트리스 밑에 숨겨놓는다.

 

그런데 갑자기 7호실 문이 봉쇄돼 버리자 당황한 그는 신하균이 없을 때를 노려 틈틈이 그 방의 문을 열러고 안간힘을 쓴다. 그리하여 결국 7호실 문을 닫아둬야만 하는 사장과 그 방문을 열어야만 사는 알바생, 두 남자의 생존분투기가 펼쳐진다. 

 

 

영화 [7호실]의 인물관계도다. 신하균의 DVD방을 팔아주기 위해 갖은 수모를 다 당하는 부동산중개인은 그 와중에도 피 같은 권리금을 깎으려고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건물관리인은 도무지 장사가 안 돼 내놓은 DVD방의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했다가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려는 신하균의 널뛰는 듯한 광기에 꼬리를 내린다. 그나마 누나가 있어서 따뜻한 떡국이나마 한 그릇 얻어먹는 신하균의 신세가 참으로 딱하기 그지 없다.  

 

 

알바생에게 제때 월급도 챙겨주지 못하는 사장은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아도 별수가 없다. 이용승 감독은 겉으로는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 노사관계, 갑과 을의 관계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별반 다를 게 없는 비참한 현실에 발을 디딘 채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맞부딪치는 스토리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한다. 1% 내지 10%의 금수저들만이 여유로운 삶을 살 뿐, 나머지 사람들은 기본적인 삶을 위해 돈 걱정에서 헤어나올 길 없는 현세태를 실감나게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 

 

신하균의 신들린 듯한 연기력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몇 년 전 TV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의 환상 속 인물로 출연해 풋풋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도경수도 그 동안 흐른 세월만큼 외모에서도 무게감이 느껴지고, 어린 나이에 벌써 삶에 지쳐 감정도 감동도 없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캐릭터가 자칫 따분하게 느껴질 수 있을 텐데도 공감이 가게 잘 살려주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그 사이에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해 온 나라가 패닉에 빠져 있었다. 지난해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에 이어 두번째로 큰 지진이라고 한다. 점점 잦아지고, 점점 강해지는 지진 앞에서 우리나라는 지진의 안전지대라던 말도 이젠 잊어야 할 것 같다. 어쨌거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시체가 담긴 가방을 자동차 트렁크에 실은 채 눈물을 흘리며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는 신하균의 웃픈 모습도 지진이라는 천재지변 앞에서는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 7호실 DVD방 사장 신하균과 알바생 도경수의 웃픈 열혈생존극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