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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한 그루의 믿음직스러운 나무 같았던 대통령 [노무현입니다]

 

한 그루의 믿음직스러운 나무 같았던 대통령 [노무현입니다]

 

 

독일의 역사학자 헤겔은 "하인에게 영웅은 없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아무리 걸출한 영웅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하인 앞에서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남들 눈에는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사람으로 존경받는 사람이라 해도 주인의 장단점이며 습관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하인에게는 그리 대단한 존재로 보이지 않기 십상이다. 대외적으로 명망 높은 남편이라 해도 아내 앞에서 쩔쩔매는 공처가 내지 경처가(?)가 되는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즉 하인이나 아내, 혹은 아주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성을 지닌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여겨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강자에게 맞서는 것이 용기이지, 만만한 사람을 짓밟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꼼수라고는 부릴 줄 몰랐던 노 전대통령은 아무리 달콤해도 정의롭지 못하면 삼키지 않고, 또 반대로 아무리 소태처럼 써도 옳은 일이라면 의연하게 삼켰던 용기를 가진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던 것일 테고 말이다.

  

한 그루의 믿음직스러운 나무 같았던 대통령 [노무현입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유시민 작가는 강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반대로 약자에게는 끝없이 약했던 그분을 향해 "노무현 대통령은 사랑스러운 분이었고, 뭔가를 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주기보다 받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에리히 프롬도 말했듯이, 주는 사람을 해본 사람은 사랑받는 기쁨보다 더 큰 것이 사랑을 주는 기쁨이요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 단, 상대가 사랑을 주기에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는 전제조건이 주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가장 비근한 예가 주어도 주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들의 행복일 것이다. 나아가 부모가 자식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면서 느끼는 기쁨 또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다.

 

이창재 감독의 다큐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보면서 가장 큰 감동을 받은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노대통령 곁에서 뭘 바라기는커녕 못 주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너무나도 크고 짙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런 비교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유치환 시인의 시귀절인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서 전국적으로 큰 물결을 이뤄나가는 느낌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주는 사랑의 행복>을 느끼게 해준 사람의 존재 자체가 크나큰 선물이기 때문이리라.

 

 

국회의원, 시장선거 등 출마하는 선거마다 번번이 낙선했던 만년 꼴찌후보였지만 2002년 대선 당시 대한민국 정당 최초로 도입된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경선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진 후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16개 도시에서 치러진 경선에서 대선후보 1위가 되고 국민의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 2002년 전국을 뒤흔들었던 그 기적의 역전 드라마를 펼쳐 보여준 노대통령은 2003년 1월 신년사에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열심히 일하면 땀 흘린 만큼 잘사는 사회, 바로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신년사를 굳이 뒤집어보자면, 이 지극히 당연한 말이 대통령의 신년사로 씌어질 만큼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열심히 일해도 땀 흘린 만큼 잘살지 못하는 사회"였음을 역설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기에 씁쓸함이 앞선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비상식과 비정상이 판을 치는 세상은 바로 얼마 전까지도 여전히 서슬 퍼렇게 존재했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혀 가질 수 없다는 암울함이 사람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더 이상 노력해 봐야 뭐가 달라질까 하는 절망감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이제 뭔가 달라질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의 빛이 비치자 그 동안 헤매었던 어두운 터널이 더 뚜렷하게 눈앞에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신뢰가 먼저냐, 민주주의가 먼저냐? 신뢰가 먼저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며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열망하던 민주주의보다 신뢰를 더 앞세웠던 노대통령은 소수의 사람들의 힘만으로라도 신뢰가 단단히 기반이 된 사회를 이룩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다가 안타깝게도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던 노대통령은 과연 그런 세상이 오기는 할까 의구심을 품기도 했지만, 그리고 진짜로 그런 세상이 왔을 때 자신이 그 자리에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도 토로했지만, "그런 세상이 오기만 한다면, 그때 내가 없은들 어때"라는 말로 또 한 번의 감동을 준다. "오늘 누군가가 그늘에 앉아 쉴 수 있는 것은 오래 전 누군가가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라는 워렌 버핏의 말이나 아들, 손자, 그 손자의 손자를 위해 7백 리에 이르는 큰 산맥의 흙을 퍼담아 옮기던 우공(愚公)이라는 어리석은 노인을 빗댄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사자성어도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리라.   

 

 

국민들을 위해 편히 쉴 수 있도록 깊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자 불철주야 고뇌하는 한 그루의 믿음직스러운 나무 같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생애를 영화를 통해 되짚어보고 있노라니 헤르만 헤세의 [나무]라는 시귀절이 떠오른다.

    

한 그루의 나무는 말한다.

내 힘은 믿음이다.

나는 나를 있게 한 아버지를 모르며,

매년 내게서 태어나는 수천의 자식들을 모른다.

나는 마지막 날까지 오직 내 씨앗의 비밀을 살아갈 뿐이며

그 밖의 일은 조금도 근심하지 않는다.

 

나는 신이 내 안에 있음을 믿는다.

나는 내 임무가 성스럽다는 것을 믿는다.

이런 믿음으로 나는 살아간다.

(...)

우리가 슬플 때, 삶이 견디기 힘들어질 때,

그때 한 그루의 나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슬퍼하지 말아라!

애통해하지 말아라!

나를 보아라!

삶은 쉽지 않다, 삶은 어렵지 않다.

 

퇴임 후에도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오래 남아 계셔줄 줄 알았던 기대감이 무너진 것이 무엇보다도 안타깝지만, "우리가 가졌던 대통령 가운데 가장 국민에게 책임있게 하려고 했던 대통령으로 기억되게 해주는 행복"을 주었기에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너무 애통해하지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눈물에 젖어 먹먹해진 마음으로 잠시 그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지 못한 채 해본다.

 

이상, 한 그루의 믿음직스러운 나무 같았던 대통령 [노무현입니다] 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