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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삼국지 영웅들의 인재등용술 7가지

 

 

삼국지 영웅들의 인재등용술 7가지 

 

삼국지 영웅들의 인재등용술 7가지 유비

 

삼국시대에는 인재들이 많았고, 어진 선비를 추천하는 데도 서로 힘을 쏟았습니다. 사람을 쓰는 것은 장기판에 말을 놓는 것과 비슷하지만, 장기 한 판은 가볍고도 유쾌한 승패로 끝나는 데 비해 인재등용은 한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거나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삼국은 인재를 등용해서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과 주의할 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중국대륙학자인 곽우가는 [성공하는 리더를 위한 삼국지]에서 삼국의 영웅들을 비교분석하여 현대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리더십을 들려주고 있는데, 이 중 [삼국지 영웅들의 인재등용술 7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과거 이야기지만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될 것입니다. 

 

삼국지 영웅들의 인재등용술 7가지 관우

 

1 아랫사람에게도 예의를 갖추어라

 

유비는 인재를 구할 때 명령을 내려 소집하는 방법을 쓰기보다는 직접 찾아갔다. 제갈공명을 만나러 갔을 때도 한 번 가서 못 만나자 못하자 또 찾아갔는데, 두번째 갔을 때는 엄동설한이어서 모진 겨울바람이 불고 눈까지 펄펄 내렸다. 유비가 이처럼 추위를 무릅쓰고 직접 간 것은 제갈공명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번째도 만나지 못해 세번째로 찾아갔을 때는 점쟁이에게 길일을 고르게 해서 3일 동안 목욕재계하고 새옷을 입었다고 한다. 그만큼 제갈공명을 얻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었던 것이다. 

 

세번째로 찾아갔을 때 와룡(臥龍) 제갈공명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이것은 유비의 성의를 시험해 보려는 것으로, 유비는 관우와 장비의 짜증을 듣고도 계속 공손하게 서서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한편 제갈공명은 몸을 뒤척이며 깨어날 듯하다가도 깨어나지 않기를 수차례 하면서 한참 후에야  일어났는데, 이처럼 예의와 정성을 다한 유비에게 감동한 그는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했다. 약소한 촉나라가 오나라, 위나라와 함께 천하를 삼분한 것은 결국 아랫사람에게도 예의를 갖춘 유비가 초능력의 지혜를 가진 제갈공명의 보좌를 받은 덕분이었다.

 

손권

 

2 인재들을 단결시켜라

 

단결이 곧 힘이다. 하나의 군대는 상하의 힘이 하나로 모일 때 가장 역량이 커진다. 그리고 상하의 힘을 모으는 관건은 통치자가 상하를 단결시키는 데 달려 있다. 유비는 바로 인재들을 단결시킬 줄 아는 군주였다. 그래서 형주의 호걸들이 유비 주위에 모여 큰 뼈대를 형성했다.

 

유비는 서쪽으로 파촉을 취한 뒤에도 성도에 거점을 두어 익주와 동주 사람들을 단결시켰다. 형주, 익주, 동주를 중심으로 유비의 단결된 세력은 큰 힘을 발휘했고, 조조와 손권은 유비를 함부로 보지 못했다. 한편 유비 덕분에 자신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던 형주, 익주, 동주의 인재들은 유비에게 충성을 다했고, 많은 사람들이 유비의 고굉대신(股肱大臣. 임금이 자신의 팔다리처럼 믿고 소중하게 여기는 신하)이 되었다. 

 

육손

 

3 나이가 많고 적음을 따지지 마라

 

유비는 인재를 알아보고 중용할 줄 알았다. 하지만 후반기에 사업이 번창한 후, 특히 황제자리에 오른 뒤 나이 많은 사람도 싫어했지만 젊은사람도 경시했다. 예를 들면 유비는 나이 많은 황충을 기용하지 않았고, 육손을 '젖비린내 나는 어린 놈'이라고 멸시했다. 이 때문에 유비는 이릉전투에서 육손에게 패하는 엄청난 손실을 겪었다. 모종강은 이런 유비를 두고 "인재를 기용함에 있어 그 사람이 재능이 있고 없음에  중점을 두어야지, 나이가 많고 적음에 중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평하기도 했다.

 

[삼국지연의]에서 묘사하고 있는 뛰어난 왕후장상들은 대부분 청년기에 유능함이 나타난 이들이었다. 제갈공명이 초가집에서 나올 때는 그의 나이 29세에 불과했고 청년 장군 육손은 관우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뿐 아니라 유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반면에 몇몇 사람은 노장을 업신여겼는데, 그로 인해 조조의 묘재(妙才)인 하후연은 노장 황충 손에 죽었다.

 

연륜이 있는 사람들의 재능은 숱한 세월에 걸쳐 단련된 것이고 경험도 풍부하다. 다만 보수성에 빠질 위험이 큰 것이 문제다. 이에 비해 젊은 사람은 신중하지 못해 경박해질 수도 있지만 용감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겁게 해낸다. 따라서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의 장점을 서로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면 인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고, 인재들 또한 각자가 가진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방통

 

4 외모로 판단하지 마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잘못된 판단으로, 형식주의에 빠지기 쉽다. 용모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아름다움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용모가 아름다워도 내면이 추할 수 있고, 용모가 추하다고 해서 내면까지 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비와 손권도 용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잘못을 범한 적이 있다.

 

수경 선생은 일찍이 유비에게 "복룡과 봉추 두 사람을 얻으면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다"고 추천했다. 그런데 이 중 봉추, 즉 방통은 매우 비범한 사람이었지만 외모가 몹시 추했다. 짙은 눈썹에 들창코, 검은 얼굴에 짧은 수염. 봉추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방통의 외모만 보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방통은 먼저 노숙이 손권에게 추천했는데, 손권은 방통의 용모가 추해 그를 기용하지 않았다. 그 후 제갈공명과 노숙은 유비에게 방통을 추천했는데, 유비 역시 외모만 보고 방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손권처럼 완전히 내치지는 않고 작은 벼슬을 하나 주었다. 

 

얼마 후 유비는 방통이 술만 마시고 일은 안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장비에게 가보게 했는데, 장비는 방통이 그 동안 미뤄온 일을 한번에 다 해치우는 것을 보고 유비에게 그의 재능을 칭찬했다. 그 말을 듣고 유비는 "그런 어진 신하를 내가 업신여기다니, 큰 실수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태종 

 

5 쓰디쓴 충고를 달게 받아들여라

 

역대로 봉건왕조에서는 충직한 신하가 간언을 하다가 쫓겨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신하의 간언을 들은 임금도 있었다. 당태종은 신하의 간언을 잘 새겨들어 당(唐)의 번영을 이루었는데,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쪽 말만 들으면 어두워지고, 양쪽 말을 다 들으면 명확해진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통치자들은 남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듣는다 해도 한쪽 말만 듣고 믿어버리는 오류를 범해 나라를 망치고 자신까지 파멸에 이르곤 했다.

 

왕위에 오르기 전 유비는 남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고 겸허함과 신중함을 갖춘 사람이었다. 하지만 제왕이 되고 난 후부터는 사적인 관계만 생각하고 공적인 적을 무시한 탓에 간언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촉나라와 오나라가 서로 싸워 쇠약해지면 조조에게 오히려 유리해질 뿐인데도 출정하려 했고, 이에 진밀이 "폐하께서는 신의 말씀을 듣고 출정하지 마십시요"라고 간했지만 오히려 유비는 "출정하지 말라고 간하는 자들을 모두 참하라"고 명했다.

 

또한 제갈공명이 글을 올려 출정하지 말라고 간하자 유비는 공명의 글마저 땅에 던지며 "짐은 이미 결단을 내렸으니 다시는 아무도 간하지 말라"고 했다. 이후 교만해진 유비에게 아무도 잘못을 간하지 못했고, 결국 오나라에 패한 후 충언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해 봐야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조조

 

6 속임수를 쓰면 사람들의 마음이 떠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군주가 성심을 다해 신하를 믿고 신하가 충심으로 군주에게 보답하면 군신간에 서로 얻는 것이 있다. 하지만 속임수를 쓰면 신하와 군주 모두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여 동상이몽하게 된다

 

당태종 이세민은 신하의 간언을 잘 들어 신하들이 거리낌없이 잘못된 점을 말했고, 한마음으로 협력해 천하를 다스인 결과 정관의 치적을 이룰 수 있었다. 반면에 진심으로 신하들을 대하지 않은 조조는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많은 인재를 모았지만 속임수를 잘 쓴 탓에 그들의 마음까지는 얻지 못했다. 이 때문에 신하들의 마음이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조조는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아무리 공이 많은 신하라도 처단해서 후환을 없앴으며, 심지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

 

이렇듯 간교한 조조는 일시적으로 사람을 얻기는 했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오랫동안 붙잡아두지는 못했고, 일찍이 유비 또한 조조의 수하에 있을 때 중임을 받았지만 그가 속임수를 쓰는 것을 보고 떠났다. 

   

제갈공명

 

7 리더가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제갈공명은 새벽에 일어나고 밤늦게 잠을 자며, 밥맛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공명처럼 리더가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하는 것은 배울 만한 일이 아니다. 리더가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하면 첫째, 인재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둘째, 인재가 성장하는 데 불리하며 셋째, 일을 잘 처리하고 해결하지 못하게 된다는 폐단이 있기 때문이다.

 

공명은 남들이 일을 잘 못할까봐 늘 걱정했고, 그 때문에 마음놓고 일을 시키지도 못했다. 그 결과 공명 밑에 있는 사람들은 공명의 깃털부채가 움직이는 대로 따를 뿐이었으며,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공명이 관장했기 때문에 도무지 머리를 쓰고 자신을 단련시킬 기회를 갖지 못했다. 북벌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각자 능력을 발휘하고 서로 힘을 합쳐야 했지만,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하려고 했던 공명은 여러 사람의 힘과 지혜를 충분히 발휘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촉나라에 인재가 별로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원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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