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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역적 연산군(김지석) "그들은 오직 나의 종일 뿐이다"

 

역적 연산군(김지석) "그들은 오직 나의 종일 뿐이다"

 

 

드라마 [역적]에서 연일 각 지방의 아름다운 여자들과 기생들을 불러 연회를 열기에 여념이 없어 급기야 '흥청망청'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내게 한 연산군(김지석)은 점점 더 타락한 군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흥청망청의 사전적 뜻은 "흥에 겨워 마음껏 즐기며 거드럭거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그 유래는 향락을 즐기는 연산군의 폭정에서 비롯된다.

 

연산군은 전국에 채홍사(採紅使)를 보내 미녀와 기생들을 관리하게 했고, 기생의 명칭도 운평(運平)으로 바꾸었다. 이 여인들이 궁중에 들어가면 운평이라는 명칭이 흥청(興靑)으로 바뀌며 지체가 높아졌는데, 황음에 빠진 연산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 흥청들을 끼고 놀았다. 뿐만 아니라 미색이 뛰어난 여인이 있다는 말만 곧바로 불러들여 범했고, 심지어는 월산대군의 부인, 즉 큰어머니에게까지 몹쓸짓을 멈추지 않다가 결국에는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흥청들과 놀아나다가 망했다고 해서 백성들간에 생긴 말이 바로 '흥청망청'이다.

 

역적 연산군(김지석) "그들은 오직 나의 종일 뿐이다"

 

한편 요염한 장녹수(이하늬)에게 푹 빠진 연산군은 장녹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데, 어느 날 장녹수가 명나라 수박이  맛있다고 하니 먹어보고 싶다고 하자 당장 대간들을 불러 곧 있을 연회자리에 내놓으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그리고 사신 편에 명나라 수박의 씨를 들이자고 하자 신하들이 나서서 극구 반대를 한다.

 

"명나라 수박 맛이 우리 것과 크게 다를 것도 없거니와, 금년에 큰 가뭄이 들어 백성의 가난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하다, 근자에 먹을것이 모자라 바가지를 들고 빌어먹는 백성들이 길에 즐비하고 도적들이 봉기해 곳곳에서 약탈을 한다, 더욱이 성종대왕 말년만 해도 창고가 가득차 있었는데, 지금은 10년도 되지 않았는데 창고가 텅텅 비었다"며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여러 신하들의 반대에 연산군은 "그래, 이런 마당에 명에서 수박을 들이자고 하다니, 과인이 과했소" 하며 일단 물러선다. 그런데 내관 김자원이 연산군의 풀죽은 모습을 보고 "가뭄으로 백성들의 살림이 어려워 대신들이 그저 한마디 한 것이니 노여움을 풀라"고 하자, 연산군은 "노여운 것이 아니라 이상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난 항상 저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헌데 오늘 내게 저리 잔소리를 하는 걸 보니 저들이 나를 어찌 생각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고 덧붙인다.

 

성군으로 일컬어졌던 아버지 성종과 비교되는 데에서 오는 자괴감, 자신의 어머니가 폐비가 되어 사약을 받고 죽은 것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 그리고 타고난 악한 성정으로 늘 들끓었던 연산군의 폭군 기질은 이런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 하나도 예사로이 넘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연산군이 이 나라 백성들을 대신이며 양반이며 천민이며 할 것 없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장녹수와의 대화에서 더 잘 나타난다. 명나라 수박 일로 대신들에게 충언을 들은 것을 안 장녹수가 "신첩이 철이 없었나이다. 명나라 수박 일로 곤란하셨지요"라고 말하자 연산군은 이렇게 답한다.

 

"아니다. 덕분에 저들이 나를 어찌 보는지 알게 되었구나. 난 아주 어렸을 적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다. 중신들이 툭하면 내게 원자답게 세자답게 또 임금답게 처신하라고 했거든. 어디 그뿐이냐. 저들끼리도 신하는 신하답게, 사내는 사내답게 여인은 여인답게 처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헌데 난 늘 궁금했거든. 그것이 정말 당연한 일일까?"

 

 

한편 이와 유사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 또 한 사람 있다. 바로 홍길동(윤균상)이다. 홍길동 역시 "먹고 싸고 자고 말하는 것이 다 똑같은데, 임금이나 신하나, 주인이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장자나 서자나,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임금이며 백성이며, 주인이며 종이며, 남자며 여자며 따지고 보면 다 똑같은 인간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홍길동의 그 말에 다른 활빈당 무리들은 "임금이랑 우리가 어떻게 똑같냐?"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저 태어난 대로 분복하며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임금이나 신하나, 양반이나 천민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다는 연산군의 생각이나 홍길동의 생각은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홍길동의 눈에는 임금은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존재로 보이는 반면, 연산군의 눈에는 백성들이 대신이건 사대부건 누구할 것 없이 한갓 종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다음 말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양반 사대부 사내들이 툭하면 삼강 오상 따위를 들먹이면서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천인과 양인이 다르다며 핏대를 세우지만, 사실 그것은 다 지들 편하자고 하는 개소리다. 남자나 여자나, 주인이나 노비나 적자나 서자나, 기실 다 같은 게지. 다를 것이 없어. 그들을 다 하나로 묶을 수 있거든."  

 

장녹수가 놀란 눈으로 "무엇으로 하나로 묶을 수 있단 말씀이셔요?" 하고 묻자 연산군은 "그들은 오직 나의 종일 뿐이다. 천지에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는 오직 하눌님의 아들 나뿐이다. 헌데 그 종들이 내게 수박을 먹어라 말아라 그리 할 수 있는 것이냐? 내 무오년에 적지 않은 피를 보면서 저들을 그리 가르치려 했건만 그 피의 의미를 그새 잊어버린 게지" 하며 또다시 피를 부를 듯한 무서운 표정을 짓는다.  

 

 

이런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기 직전까지도 “조선은 왕의 나라다. 조선의 백성 모두가 왕의 신하요, 조선 땅의 풀 한 포기까지도 모두 내 것이다. 조선의 모든 것이 본시 내 것인데, 너희가 내 것을 빼앗아간 것이 아니더냐? 이제 다시 내가 찾아오려 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등 자신의 독재와 폭정을 정당화시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굶어죽어가면서도 임금이라면 하늘처럼 떠받들던 백성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여 반기를 들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을 무시하고 백성을 오직 종으로만 여기는 임금의 말로는 언제나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 결국 1506년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은 군(君)으로 강등된 뒤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그해 11월 병으로 죽었다. 그때 연산군의 나이 31세였다. 왕의 묘호(廟號)도 받지 못했고, 연산군의 식솔들 역시 궁에서 쫓겨나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다. 연산군의 묘는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데, 이곳에는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고 적힌 석물만 있다고 한다. 

 

이상, 역적 연산군 "그들은 오직 나의 종일 뿐이다"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 드라마 [역적]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