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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더 킹 권력 해바라기 조인성이 쓴 부패검찰 보고서

 

더 킹 권력 해바라기 조인성이 쓴 부패검찰 보고서 

 

 

대한민국 부패검찰의 뒷세계를 낱낱이 까발린 영화 [더 킹]에서 그 보고자 박태수 역을 맡은 인성은 "나의 아버지는 동네 양아치였다"고 고백한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아버지는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남의 것을 빼앗거나 훔치는 잡범이 할 법한 짓은 하나도 빼놓지 않는 양아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대로만 산다면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태수 역시 아버지와 하등 다를 게 없는 양아치의 삶을 살 게 분명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검사가 태수가 사는 동네에까지 와서 태수 아버지에게 마구 발길질을 하고 또 태수 아버지는 태수 아버지대로 검사의 발길질을 고스란히 받으면서도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아버지를 한방에 제압하는 검사의 모습에 흥미가 동한 태수는 느닷없이 검사가 되기로 작정을 한다.

 

현실에서야 검사가 되겠다는 그런 결심을 한다고 해서 단박에 검사가 되는 기적이 일어날 리 없지만, 영화 속 가상의 세계이니만큼 태수는 기상천외한 공부 방법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검사의 세계로 입성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근엄한 법의 집행자이지만 그 속내는 권력 유지를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농단하는 부패검찰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게 된다. 동네 양아치 태수 아버지가 불법을 넘나드는 동네  양아치였다면 썩을 대로 썩은 그들은 합법을 가장한 양아치였던 것이다.

 

더 킹 권력 해바라기 조인성이 쓴 부패검찰 보고서

 

영화 [더 킹]은 이렇게 제목은 그럴싸하지만 왕이 아닌 양아치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작은 물에서 노는 동네 양아치냐 아니면 큰물에서 노는 국가 양아치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동네 양아치는 태수 아버지 부류이고,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국가 양아치는 요즘 동네북이 된 검사 부류다. 특히 영화에서 검사들 세계의 정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한강식 역의 정우성은 가히 최고급? 최상급? 양아치라 할 만하다. 여기에 조폭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들개파 두목 김응수(김의성)라는 조폭 양아치까지 합세해서 각종 양아치들은 그 끝이 어디에 이를지 뻔한 더러운 파티를 벌인다. 

 

 

양아치는 본디 거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거나 품행이 천박하고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6.25 전쟁 직후 고아가 되어 구걸을 하러 다니는 소년들을 '동냥아치'라고 부르던 것이 짧게 줄여진 말이기도 하다. 주로 12~18세의 연령대였던 이들은 구걸 외에도 소매치기나 강도, 폭행 등을 일삼았기 때문에 비행 청소년으로 치부되었고, 양아치라는 말은 상대를 크게 모욕하는 속어가 되었다.

 

또 이따금 영화나 드라마에서 양아치라는 말에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건달'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오히려 어깨를 으쓱거리며 "난 양아치가 아니야, 건달이야" 하는 대사를 듣게 되기도 하는데, 건달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거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 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를 가리킨다.

 

그들이 느끼는 양아치와 건달의 개념 차이는 무엇일까 짐작해 보면, 양아치는 의리도 없는 인간 쓰레기이고 건달은 그래도 어떤 힘겨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더 킹] 속 등장인물 중 최고 양아치는 검사 한강식(정우성)이고 그 다음은 한강식의 똘마니 배성우이며, 그 다음은 박태수(조인성)다. 들개파 두목 김의성은 또 다른 부류의 양아치이고, 박태수의 친구 최두일 역의 류준열은 양아치라기보다는 건달에 가까운 것 같다.

 

 

동네 양아치, 조폭 양아치, 국가 양아치들이 호화판으로 벌이는 파티여서 양아치에 관한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길게 하게 되었는데, 누설의 염려가 있으니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정도로만 스토리를 소개해 보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폼나게 살고 싶었던 박태수가 대한민국을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을 만나 세상의 왕으로 올라서기 위해 펼치는 이야기다.

 

조인성은 권력의 맛을 알게 된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한민국의 권력을 설계하고 기획하며 세상 위에 군림하는 인물이 되기까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아우르며 섬세하고 다양한 감정선을 펼치고, 대한민국의 권력을 설계하고 기획하는 차세대 검사장 후보 한강식 역을 맡은 정우성은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캐릭터를 잘 살려 선 굵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그리고 전략 3부의 핵심인물이자 권력 앞에서 순종적인 검사 양동철 역을 배성우는 조인성과 정우성 사이를 오가며 이중적인 박쥐 같은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재림 감독은 몇 년 전 "대한민국처럼 권력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있을까?"라는 답답함에서 권력가들의 민낯을 들춰내는 [더 킹]의 기획을 시작했다고 한다. 태수라는 주인공을 따라서 권력의 꿈, 행복, 쾌감 같은 것을 쭉 느끼다 보면 결국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조리함, 그 안에 있는 어떤 모순들을 거부감 없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문제점을 명확하게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는 것이다. 조인성의 나레이션을 따라 서술되는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을 취한 영화는 사건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 에피소드 중심인데, 자칫 <영화도 아닌 것이 다큐멘터리도 아닌 것이>라는 느낌을 가져와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조폭 들개파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돈과 힘으로 권력의 뒷세계를 받쳐주는 그들은 놀랍게도 필요하면 개들을 풀어 눈엣가시 같은 인물들을 흔적도 없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끔찍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잔뜩 굶긴데다 식욕을 돋구게 하는 약까지 먹은 개들에 의해 인간이 발기발기 찢기고 어느덧 살점 하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예전에 조폭이 한창 횡행하던 시절 조폭이 되느냐 마느냐를 개를 이용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일단 조폭에 입단하면 몇 달간 한 방에 가둬놓고 무지막지하게 먹여서 힘과 살을 불린 다음 며칠을 굶긴 개를 들여보내 싸워서 이기면 인정한다는 끔찍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더 킹]에서는 개를 아예 작정을 하고 살인도구로 사용한다. 씬스틸러 김의성이 들개파 두목이다. 한 마리 고독한 늑대를 연상케 하는 김의성의 표정없는 음산한 얼굴은 으스스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오히려 권력의 정점에 선 한강식보다 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영화는 다행히(?) 속시원한 결말을 보여준다. 한강식, 배성우, 김의성 등 하나도 빠짐없이 처참하게 추락하는 사필귀정의 길을 걷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요즘 같은 현실이니만큼 영화 속에서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결말이었다면 분노게이지가 상승해 뒷목을 잡고 영화관을 나왔어야만 했을 것이다.

 

검사가 그토록 무서운 것인가? 하지만 그 막강한 권력을 자신의 부를 쌓고 라이벌들을 짓밟는 데 사용한다면 태수 아버지 같은 동네 양아치와 다를 게 무언가? 

 

엔딩에서 처절하게 배신당한 조인성은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양아치 검사 한강식에게 복수의 칼을 제대로 휘두른 뒤 대통령 선거에까지 나서서 "대한민국의 왕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대한민국의 주인이자 왕은 국민>임을 인식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보이는데, 그럼에도 가상의 세계에서나마 "국민!"이라고 거침없이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결국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대한민국의 왕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당근 국민!"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리라. 나아가 더 바란다면, 그런 문답 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어야만 할 것이다.

 

이상, 더 킹 권력 해바라기 조인성이 쓴 부패검찰 보고서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